우리나라에 주 5일 근무제(이하 주 5일제)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03년 8월,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2004년 7월이다. 근로자의 복지와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한 주 5일제는 국내 도입 당시 경영 타격을 우려하는 재계 반발이 거셌으나, 오늘날 삶의 질과 노동 효율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올해 21년 차를 맞이한 주 5일제가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는 6월 3일 치러질 21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각각 주 4.5일제와 주 4일제 공약화를 점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떠오른 주 4일제 논의
주 4일제가 논의된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업무에 적극 활용되며 전통적인 노동 방식을 벗어나도 생산 환경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여당은 정부 주도의 지원과 규제를 통해 주 4일제를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주 4일제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생산성 감소, 기업 부담 증가 등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주 52시간 근로제 유연화’를 공약으로 내걸며 연평균 주 52시간 근로를 유지하되, 노사 합의하 업무별 특성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선 이후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노동시간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실제 노동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이라는 뭇매를 맞고 개혁안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사실상 노동 시간 개혁은 논의 단계에서 물거품이 된 셈이다.
유연근무제 vs 노동시간 축소
지난 대선과 달리, 현재 여야는 모두 근무제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 14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유연 근무제를 활용한 주 4.5일제를 정책으로 적극 추진하겠다”며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대선 공약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 5일제와 주 52시간 근로 규제는 시대의 흐름과 산업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제도라며 정책 공표의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보다 앞선 2월 10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4.5일을 거쳐 주 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지난달엔 민생연석회의 의제에 주 4일제를 포함했다. AI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노동시간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근거다.
다만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노동 시간 개혁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이 내세우는 주 4.5일제는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유지’와 ‘주 52시간 근로제 폐지’를 골자로 한다. 현재 다수 기업이 시행 중인 유연근무제를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근로자의 총 근로시간에는 변화가 없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시간 자체를 줄인다는 점에서 국민의힘과 접근법이 다르다. 지난 3월 12일, 더불어민주당은 주 4일제를 포함한 ‘20대 민생 의제’를 발표하면서 “한국 연평균 노동시간이 1,874시간으로 OECD 평균 대비 130시간 많다”라며 노동 시간 선진화가 불가피하다고 설파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되 받는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의 주 4일제를 비판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제안한 안은)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도 노사합의만 되면 가능하다”라며 “추가 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용자가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겠다면, 이는 명백한 노동자 권익 침해이자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강하게 맞섰다.
양당이 노동시간 개혁에 의지를 비치는 것은 차기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20대와 30대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202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20~30대 근로자 10명 중 7명(73.5%)은 유연근무제가 업무성과 및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과 ‘주 4일제 네트워크’가 지난해 8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및 주 4일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률이 높은 연령층은 20대(74.2%)와 30대(71.4%)였다. 이들 세대는 워라밸에 대한 욕구가 특히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보수와 진보 대선 후보 모두가 노동 시간 개혁을 공약화할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어느 쪽의 공약이 더욱 높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지, 또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하고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한 공약으로 어느 쪽이 선택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사진 출처: Freepi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