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를 통해 정치·사회적 신념 등을 적극 표출하는 행동양식)과 가치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르며 비건을 향한 대중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중의 호응을 등에 업고 ‘식품’에만 국한되었던 비건 상품은 패션, 뷰티, 의약품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K-뷰티 신드롬을 다시금 불러오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뷰티 업계의 비건 제품이다.

1조 원 시장 규모 달성 앞둔 비건 뷰티

‘한국비건인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건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3년 1,600억 원, 2022년 5,700억 원 수준으로 9년 사이 4배 정도 늘었다. 올해는 약 2배에 가까운 1조 원의 시장 규모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면 2022년부터 연평균 6.2%씩 꾸준히 성장해 2032년에는 286억 달러(약 40조 7,922억)에 달할 것으로 시장조사기관 마켓리서치비즈(Market Research Biz)는 예측한다. 국내외에서 비건 화장품이 뷰티 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떠오른 것이다.

비건 뷰티의 흥행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판매하는 비건 지향 메이크업 브랜드 ‘아워글래스(HOURGLASS)’다. 해당 브랜드 매출은 2024년 1~4월 전년 대비 120.8% 증가하며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최근 뷰티 사업을 발 빠르게 확장 중인 ‘무신사’ 측에 따르면 ‘무신사 뷰티’에 입점한 비건 브랜드 '프레비츠'의 2024년 8월 거래액은 동년 7월보다 18배 증가했다. “최근 클린 뷰티, 비건 뷰티 트렌드 영향으로 신진 비건 브랜드 입점도 이어지고 있다”는 관계자의 전언은 비건 뷰티의 인기와 긍정적인 전망을 증명한다.

비건 여부보다 나에게 잘 맞는지를 더 따져봐야….

제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건 뷰티는 윤리적 장점이 명확하다. 다만 비건 화장품이 사람 피부에 더욱 순하고 잘 맞는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 식물성 원료가 좋은 제품력을 방증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동물성 화장품 원료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달팽이 점액질을 활용한 뮤신 ▲어류와 돼지 껍질에서 추출한 콜라겐 ▲꿀이 함유한 프로폴리스 ▲벌집에서 추출한 비즈왁스 ▲상어 간의 기름 성분을 활용한 스쿠알란 ▲연어의 정액에서 추출한 PDRN까지 매우 다양한 동물성 원료가 그 기능을 인정받으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동물성 원료를 식물성 원료가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을지대 화장품미용학과 신규옥 교수는 헬스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요리를 할 때 동물성 원료를 제외하고 식물성 원료만 사용한다면, 그게 동·식물 재료 모두를 편히 쓰는 것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거나 몸에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화장품 공정도 이와 마찬가지다”라며 비건 화장품이 피부 건강에 이롭다는 인식에 회의적인 접근을 보였다. 14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씬님은 올해 3월 비건 뷰티를 주제로 한 영상에서 “(비건 화장품들을 연구해 보니) 동물성 성분들이 확실히 인체에 적용되는 시간이나 효과가 좀 큰 것 같다.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이다”라며 경험담을 공유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건 제품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개인의 피부 유형과 피부 고민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제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업계가 트렌드에 맞추어 비건 화장품의 제품력 향상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일반 제품과 비건 화장품의 제품력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2024년 매출 3,090억 원,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 54.5%를 기록하며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보이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 ‘달바글로벌’의 제품 리뷰를 살펴보면, 비건 제품이라는 수식을 빼고 보아도 제품력이 뛰어나 구매하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제품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기업의 성장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화장품에 사용되는 동물성 원료는 미량에 불과하므로 제품력을 크게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지대하진 않다는 주장도 있다. 요컨대, 화장품의 비건 여부는 제품력을 좌우하지 않는다. 비건 화장품 구매를 고민할 때는 윤리적 요소에 가치 판단 기준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비건 뷰티를 넘어 ‘클린 뷰티(Clean Beauty, 유해 성분을 배제하고 환경 보호를 고려하여 만드는 화장품)’가 뷰티 업계의 필수 키워드가 된 지금, 한국의 뷰티 업계가 더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자명한 미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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